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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에는 시대정신이 철철 넘쳐흐른다. 아니, <소공녀>가 시대정신이다. 소득은 낮고 집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청년세대, 그것도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 여성이 만나는 연인은 웹툰 작가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전임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처럼 중동으로 사라진다, 눈물을 흘리며. 여성은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하는 대신 집을 포기한다. 등짝맞을 결정이지만, 그는 그렇게 결정한다.

주인공이 전전하는 친구라고 번듯하게 사는 건 아니다. 동아리에서 좋은 키보디스트였지만 그 재능은 철저히 무시받고 요리를 못 한다고 구박받는 친구. 결혼을 맞이해 빚을 내서 아파트를 샀는데 반려자는 헤어지고 융자만 남은 친구. 주인공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고 무례하게 결혼하자고 청하며 감금하는 노총각 친구와 부모. 단순히 아직 다 꽃피우지 못해서 힘들다기엔 뭔가 이상한 현실이다. 이런 주인공과 친구에게 부동산업자는 언덕배기 방을 추천하는 것도 모자라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곰팡이 가득한 방을 권한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청소일을 하며 만난 성매매 여성을 위로한다. 당신이 임신하고 쫓겨나는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라며. 그리고 따뜻한 밥 한끼를 해준다. 사실, 그 장면은 비정규직(일용직) 청소노동자인 주인공이 해고당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그를 위로한다. 어쩌면 그 관계는 사용자와 노동자가 아니라 같은 굴곡진 인생을 사는 청년 여성으로서의 동지애가 아닐까. 이 장면에서는 거의 성인(聖人)을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회도, 친구도 구하지 못한 친구는 텐트노숙을 결정한다. 로케이션 상 부산 해운대같았다. 주인공은 어떻게 저기까지 갔을까, KTX값은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짠했다. 결국 머리가 하얘지는 병을 막을 한약도 포기해 백발이 다 되어서. 몇 년 전 UN 제네바 본부에서 일하는 청년이 비싼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노숙하며 근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그 가십같은 기사와 얼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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