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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와 부모가 상호작용하며 성장하던 60년대와 부모와 내가 함께한 90년대는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아직 비혼 상태에 있지만 내가 만일 조만간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는다면 2020년대가 될 것이다. 60여년의 시간동안 한국 사회도 빠르게 변하고, 육아도 빠르게 변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시키는 막걸리 심부름을 했다. 나는 회초리를 맞긴 했지만 배고프지는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내 자녀는 어떻게 바뀐 세상을 살까.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한다. 장가갈 수 있을까. 나에겐 다른 사람이 어렵지않게 치르는 것처럼 보이는 통과 의례가 너무 버겁다. 취업, 연애, 결혼. 앞에 일이 엄두가 안 나는데 출산까지는 생각하기도 벅차다. 조금 늦은 내 인생을 질책하지 않는 바다와 같은 부모도 내 결혼과 출산에는 기대를 가진다. 나도 결혼하고, 출산하고 싶다. 어떻게 표현해야 혐오적이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다수가 따른 삶의 경로를 택하고 싶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다. 사실 아직도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느낌이다. 시어머니와의 관계, 아이와 함께할 때 느끼는 희열과 답답함. 이런 것들은 아직 내게 와닿지 않는다. 필력이 부족하신 것이 아니라 경험하지 않아서이다. 오히려 뛰어난 필력 때문에 체험 없이도 술술 읽어낼 수 있었다. 본인이 가진 자매 가운데 첫째로서의 정체성을 적으시고, 그것이 자매를 낳아 기르시는 동안 관찰하게 되는 첫째로서의 아쉬움과 결핍을 풀어내실 때에는 참 공감도 많이 갔다. 나도 형제 가운데 첫째로서 느끼는 점이 많았다.

작가님은 책 마지막에 남녀를 불문하고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당위를 설명하셨다. 나도 그 길을 응원한다. 나도 페미니즘에 대해 책을 읽고 공부하고 있는 과정에 있어서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책을 보면 볼수록 페미니즘이 한국과 세계를 가장 크고 바르게 바꿀 이념, 또는 안경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지난 10여년간 나는 지역주의와 지역성, 소수자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관련된 글을 읽었다. 이제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할 때이다. 그래서 2020년대, 내가 마주할 지 모르는 아들이나 딸에게 더 나은 세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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