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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서평

<극한의 경험>-읽는게 극한의 경험

연희관쭈구리 2018. 1. 15. 13:03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가 워낙 명성이 높아 유발 하라리가 대체 누구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앞 두 권은 도서관에서 워낙 절찬리에 대여 중이었다. 그래서 그나마 예약 순위가 빠른 <극한의 경험>을 먼저 받아 읽었다.

다 읽고 나니 많이 실망스럽다. 책은 과거부터 20세기까지 다양한 전쟁 회고록을 나열하며 그 차이를 언급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았다.가장 핵심은 전쟁에 대해 사람들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전쟁터에서 겪는 추위나 고통, 환멸 등을 표출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게도 당시 회고록을 기록한 이들은 그러한 사실을 전혀 묘사하지 않는다. 이것은 검열의 문제나 화력 차이, 전법 문제라기 보다 인식의 문제라는 하라리의 설명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군과 전쟁, 전쟁 문화를 시대를 풍미한 사조 변화를 통해 설명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병사를 기계로 이해하는 데카르트형 네덜란드 군대가 병사 개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프랑스 혁명군으로 바뀌는 과정은 꽤나 인상적으로 읽혔다. 그러면서 동시에 유럽에서 많은 사상을 수입한 일본이 왜 그것은 배우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일본의 정신력 숭상은 세계사적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의 충돌과 핵폭탄으로 인한 유물론의 승리를 불렀음을 하라리는 읽었다. 한국사적으로는 일본을 배운 군대가 악폐습을 70여년간 유지하고, 아직도 사람들이 박정희주의와 정신일도 하사불성에 빠져있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혼란스러운 것은 두가지인데, 우선 인용 나열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다양한 회고문을 인용해 본인 주장을 뒷받침해야겠지만 그 양이 너무 길어 혼란스러웠다. 또한 전쟁이 개개인에게 '계시'를 준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대에 그렇지 않다가 근대 후기 군인만 계시를 얻고 현대로 오면 전쟁에 대한 환멸이 다시 커진다는 이야기는 내게 이상하게 다가왔다. 또한 근대 후기에 한정하더라도, 전쟁터에서 몸으로 목격한 계시를 얻고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이를 배제하게 되는 인식으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하라리는 19세기 병사들이 휴전을 아쉬워하고 그리스 등으로 인터내셔널 용병으로 참전하는 일을 담담히 그렸는데, 현대를 사는 내게 이것은 과잉된 군국주의의 발현으로밖에 다가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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