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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서평

<잉여와 도구> - 소설인가 실화인가

연희관쭈구리 2018. 1. 18. 07:26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대학살은 너무도 끔찍해서 심리학이나 정치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의 연구대상이 되곤 한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언급한 '악의 평범성'은 많은 사람들이 가진 상식을 뒤바꿔놓은 개념이었다.

<잉여와 도구>는 아우슈비츠가 흘러간 수용소가 아님을 보여준다. 최고로 평가받던 언론사와 직장이던 MBC가 파탄이 나는 과정을 보도국 중심으로 예리하게 보여준다. 사측은 비인격적 인사관리를 '잉여'와 '도구'로 노동자를 나눈다. 보도라는 노동에서 철저히 배제시킨 '잉여'와 주축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품질 관리를 위해 적당하게 참여시킨 '도구'. 해고자는 해고자대로, 잉여는 잉여대로 괴롭고 도구는 도구대로 수치스럽다. 동료가 쫓겨난 자리를 채운 시용기자를 나라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강고한 조직과 지지, 연대가 흩어진 2012년 파업 이후 드러난 취약한 개인이 회사의 사소한 인사조치에 무너진다. 이 고백은 공영방송 재건에 참고할 이야기이다. 약한 개인이 연대해 강한 노조를 만들고 공정방송을 지켜왔는데, 외부 압력에 힘을 잃었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외압이 애초에 들어오지 않을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책이 마지막으로 흘러가며 나온 글쓴이와 인터뷰이의 지적은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저널리즘이 기자 개인 역량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왔는데, 힘든 시간을 겪고 보니 사회 전체 흐름에 얹혀있는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인터뷰이는 말한다. '우주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하면 불교에서 나올만한 철학적 이야기같지만, 사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가치가 그렇다. KTX 노동자가 해고되었는데 기자가 해고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저널리즘도 결국 노동자성 위에 서있고 사회적 자유와 연동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힘든 시간 겪은 MBC 구성원과 언론노동자들이 잊지 않기 바란다.

MBC가 재건되길 바란다. 이미 엄청난 동력이 느껴진다. 다시 좋은 친구, 11번 MBC로 돌아오는 시간이 빨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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