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한 명이 10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노동 시간은 저녁이었고, 평일마다 일했다. 그 친구는 일을 그만두었지만 같이 일하던 동료를 통해 주휴수당과 야근수당을 못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용노동부를 통해 진정을 내고 지급을 요청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그 사실을 파악해 내 친구에게 전화했다. 인간적인 정,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 높으신 분의 심기, 지금이 (회사에게)적절한 때가 아님을 들어서 집요하게 진정을 취하하라고 요구했다. 친구는 내게 고민을 토로했다. 취하해야하냐고. 나는 그 직장에 들어갈 생각이 아니라면 신청하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꽤 큰 금액의 일시불을 받았다. 참 다행이었지만, 노동계약서도 쓰지 않고 쓰겠다고 나서는 노동자를 이상하게 보는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
어제 서평을 올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고백할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예전 일이다. KTX를 탔는데 아이가 시끄럽게 칭얼대고 울고 부모에게 말을 걸었다. 그 소리가 차내에 꽤나 시끄럽게 머물렀다. 젊은 부모는 아이를 밖에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시골에 사는 내 부모님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 아이를 말리지 않은 개념없는 젊은 부모를 나무랐다. 그 부모와 아이는 내게 차내에서 통화하는 노인, 심지어 음악을 외부 스피커로 듣는 아저씨와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노키즈존에 관한 논란을 접하고 내 입장을 정리했다. 노키즈존은 차별이고 소수자에 대한 혐오라고. 그러다가 그때 그 KTX가 생각났다. 그러면 너는? 그때는 왜 그렇게 생각했어? 최승호 시인의 가 떠올랐다. 너도 북어지? 매우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그..
조부모와 부모가 상호작용하며 성장하던 60년대와 부모와 내가 함께한 90년대는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아직 비혼 상태에 있지만 내가 만일 조만간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는다면 2020년대가 될 것이다. 60여년의 시간동안 한국 사회도 빠르게 변하고, 육아도 빠르게 변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시키는 막걸리 심부름을 했다. 나는 회초리를 맞긴 했지만 배고프지는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내 자녀는 어떻게 바뀐 세상을 살까.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한다. 장가갈 수 있을까. 나에겐 다른 사람이 어렵지않게 치르는 것처럼 보이는 통과 의례가 너무 버겁다. 취업, 연애, 결혼. 앞에 일이 엄두가 안 나는데 출산까지는 생각하기도 벅차다. 조금 늦은 내 인생을 질책하지 않는 바다와 같은 부모도 내 결혼과 출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