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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박종철 열사 31주기

연희관쭈구리 2018. 1. 14. 07:40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꽃다운 청년 박종철이 사망한지 31년이 되는 날이다. 30주기보다 31주기에 우리가 그를 더욱 기억하는 이유는 지난해 이맘때 복잡한 정치상황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영화 <1987>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1987>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1987>은 존재 자체가 감사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박종철이나 이한열을 떠올릴 때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들이 헌신함으로써 역사가 진보했다는 믿음이 첫번째이다. 두 열사를 떠올릴 때마다 미안한 감정, 죄스러운 감정, 좋은 나라를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사가 '그들이 죽어 제물이 되었고, 그 이후(또는 그것을 계기로) 개헌이라는 절차적 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다'라고 쓰여진 글을 볼 때 망설여진다. 그런 직선적 서술이 조직을 위한 죽음과 희생을 미화하는 것은 아닐까?

또 다른 이유는 서울중심주의, 엘리트주의와 맞물린 두 열사에 대한 조명과 이에 대조해 잊혀진 다른 열사의 투쟁이다. 대중이 실력순, 실적순대로 관심가지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해 여름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과 이석규 열사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떤 관심도 없다. 6월 항쟁은 군부독재세력과 기득권세력의 연합에 맞선 대학생과 중산층 위주의 연합의 도전이었다. <1987>에도 나오는 동아일보, 중앙일보 보도는 치졸하고 오랜 군부독재에 신물을 느껴 기득권 세력이 일시적으로 변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기득권 세력은 궁극적으로 대학생 출신이었다. 잠시 시소가 기울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진 노동자대투쟁에 대한 역사적 무관심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노동현장에 투입되어 노조를 조직하며 노학연대를 추진한 일부 대학생 세력이 있었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 중산층, 대학생 대부분은 노동자 문제를 본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침묵했고, 때로는 과잉이라며 비판했다. 지역적으로 서울과 멀리 떨어진 울산과 경남에서 주도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사실은 더욱 큰 무관심을 야기했다. 

그리고 노동자를 배제한 6월 항쟁은 결국 12월에 좌절된다. 보통 노태우 당선은 양김으로 대표되는 정치세력 사이 갈등 탓으로 묘사된다. 그 말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노동자 대투쟁이 무시되었기에 12월 선거 국면이 수싸움으로 전락한 것이다. 대조적으로 2016~2017 촛불혁명은 짧은 기간에 광장을 통해 다양한 욕구를 분출하고 포용하며 성공적인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물론 그 안에도 대선 토론에서 '동성애 반대' 사건 등 모욕적인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시민은 가는 곳마다 눈물을 보이며 소수자를 안아주던 심상정에게 진보정당 역대 최다 득표를 선물하며 조금이나마 만회했다.

두서없는 글을 닫자면, 386 세대가 독점한 '87년 절반의 민주화는 2017년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여성, 노동자, 농민, 성소수자, 장애인 등 이땅의 약자를 모두 안는 혁명이 미래를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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