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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서평을 올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고백할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예전 일이다. KTX를 탔는데 아이가 시끄럽게 칭얼대고 울고 부모에게 말을 걸었다. 그 소리가 차내에 꽤나 시끄럽게 머물렀다. 젊은 부모는 아이를 밖에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시골에 사는 내 부모님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 아이를 말리지 않은 개념없는 젊은 부모를 나무랐다. 그 부모와 아이는 내게 차내에서 통화하는 노인, 심지어 음악을 외부 스피커로 듣는 아저씨와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노키즈존에 관한 논란을 접하고 내 입장을 정리했다. 노키즈존은 차별이고 소수자에 대한 혐오라고. 그러다가 그때 그 KTX가 생각났다. 그러면 너는? 그때는 왜 그렇게 생각했어? 최승호 시인의 <북어>가 떠올랐다. 너도 북어지? 매우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그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나는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것', 더 짧게 요약하자면 소극적 자유의 가치를 우선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겪는 여러 사건을 지켜보며, 혐오에 반대하는 연대가 가지는 가치를 더욱 신봉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입장이 바뀌었다.

사람은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예전에는 나도 무턱대고 욕했지만, 정치인이 정당을 바꾸고, 공약을 철회하고, 입장을 바꾸는 것을 무턱대고 욕할 수는 없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이, 정치인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설명이 필요하다. 시민을 상대로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설명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설명할 수 있는 발전적 변화를 추구하자. 그리고 그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하자. 새로운 지향이 내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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