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동에 있는 한국영상자료원에 처음 방문했다. 극장 시설이 CGV 같은 상업영화관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무료였다. 틈이 나면 자주 갈 생각이다. 오늘 내가 본 영화는 이었다. 이 영화는 20세기 초 태어난 한 일본인 남성이 실제로 살아온 이야기를 극화한다. 남성은 어린 시절 홍역에 걸려 시각장애를 가지게 된다. 이후 어머니 권유로 유랑 악사가 되지만, 사실상 구걸로 연명하는 셈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인상깊게 본 장면은 '어머니'가 등장하는 부분이다. 통신 시설이 거의 없는 20세기 초 일본에서 어머니는 유랑하고 있는 치쿠잔을 3,4회 찾아낸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서 중매를 2회 제의하고, 집에 돌아오라고 말한다. 나는 거기서 봉건과 근대를 헤매는 일본인을 느꼈다. 비록 구걸과..
수도가 얼어붙은지 6일차, 보일러가 꺼진지 5일차가 되었다. 냉골에서 자고, 샤워는 목욕탕에서 하는 생활이 이어졌다.금요일에 옆집에서 연락이 와서 함께 수리하자고 했다. 40만원을 두집이 나눠내는 조건이었다. 거액이라 부담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으니 수락했다.어제는 공사 예정일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일정이 있어서 현장에 있을 수 없었다. 밤에 돌아와보니 냉수는 나오는데 온수가 나오지 않고 난방도 되지 않았다. 보일러로 가는 배관은 녹이지 않은 모양이었다.오늘 아침 드라이기를 가지고 보일러가 있는 베란다로 나갔다. 서너시간을 매달려 열심히 녹여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드라이기로 올라온 베란다 먼지만 엄청 마셨다. 결국 동네 철물점에 나가 보일러를 녹일 설비업자분을 불렀다. 그 분이 오셔..
밀양 병원에 큰 화재가 났다. 가장 화가 나고 아쉬운 점은, 입원실이 있는 병원인데도 스프링클러가 없다는 사실이다. 스프링클러가 구비되었던 2015년 나주 요양병원 화재에는 희생자가 없다. 건축법에 의하면 요양병원, 11층 이상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만이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라고 한다. 이해할 수 없다. 입원실이 있는 병원이라면, 게다가 노인이 많이 입원해있는 병원이라면 당연히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으로 규정했어야 하지 않을까?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사람보다 자본이 먼저인 것일까. 이 참에 민학관군이 다 모여, 안전과 관련된 법과 시행령을 모두 살펴봤으면 좋겠다. 잘못된 점은 없는지, 시대에 맞지 않는 점은 없는지. 이제 더이상 소규모 시설이라고 안전에 관해 예외를 두는 일이 없어야 한다. 소규모시설..
군에서 돌아온 후, 테니스동아리에 가입하고 싶었다. 내가 몇 가지 생활체육을 즐기고 싶었다. 보는게 즐거워서 참여해보고 싶은 야구도 있지만, 탁구나 배드민턴같은 코트에서 세트를 나누는 구기 종목을 배우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 중에 테니스가 내 최종목표였다. '테니스가 그렇게 체력소모가 길다던데, 얼마나 힘들고 운동이 되길래 그럴까?' 이런 호기심 덕에 테니스동아리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 생각을 접었다. 테니스 동아리가 나이가 아닌 자체 기수에 따라 엄격한 선후배 위계를 따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리버럴리스트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군대도 겨우 마치고 왔는데 또 그런 세계에 내 심기를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때 일이 후회되지 않았다가, 최근 정현을 보며 다시 떠오른다. 정현 선수 경기를 보는 ..
수도가 또 얼었다. 올 겨울에만 11월에 이어서 두번째이다. 그때는 추위가 갑자기 다가와서 대비하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수도관을 잇는 열선 코드도 꽂았고 수도꼭지를 일부러 조금 열어두어 물을 흐르게 해두었는데도 그렇다. 아침 영하 17도, 낮에도 영하 10도를 넘나드니 어쩔 수 없나보다. 낡은 다세대주택인지라 이런 일이 빈번하다.2층 아주머니께 전화해봤더니 2층은 물이 나온단다. 옆집은 안나온다니 3층으로 오는 물길이 얼었나보다. 상수도 구조는 알 수 없지만 옥상 바로 밑 층이라 물탱크에서 내려오는 길이 언 모양이다.이번주 내내 바빠서 낮에 집에 있을 수도 없고, 시간을 낼 수도 없는데 고민이다. 게다가 다음주 초까지 낮에도 영상으로 올라올 기미가 없다. 내일 옆집과 합의해서 사람..
이사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응암동으로 떠난다. 홍제동을 6년만에 떠난다. 처음 이사올때에는 낯선 동네였지만 정이 많이 들어 등지기 아쉽다. 새로 이사올 홍제동 주민을 위해 몇가지 꿀팁과 정보, 약간의 단점을 정리하고자 한다. 내가 살던 곳은 홍제1동 33x-xx번지였고, 홍제내0길 구역이었다. 그랜드힐튼호텔 맞은편 언덕배기에 있다. 1) 교통지하철을 주로 이용하는 주민이라면 3호선 홍제역까지 도보로 이동하기 멀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마을버스 서대문09를 비롯해 서대문01, 서대문10, 서대문14, 그 외 3개 노선의 일반 버스가 홍제역으로 2정거장 정도 걸려서 간다. 그 외에 신촌으로 가는 버스 4개 노선, 광화문으로 가는 노선 1개가 있어 생활권에 따라 환승할 필요가 적은 곳이기도 하다. 2)..
특별히 볼만한 프로그램을 찾지 못했을 때 채널을 YTN에 두곤 한다. 어제 YTN은 사실상 였다. 경의선을 넘는 모습부터 서울역에서 KTX를 타는 모습까지. 심지어 강릉에 가서도 라이브는 이어졌다. 현송월 단장은 한국 미디어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경의선 육로 통행이 2년여만에 재개되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오랜만에 북한 인사가 남한에 방문하는 것이라 남한 사회도 현송월의 방한에 관심을 가질 유인이 충분했다. 조선일보가 오보한 총살설, 확인되지 않은 옛 애인설 등으로 인한 개인 여성에 대한 관심도 컸다. 또한 북한에서 온 인물이 KTX를 타고 이동한 상황도 남한 사회가 처음 접한 상황이다. 이 모든 상황이 불과 몇 달 전 핵위기, 전쟁위기 이후 온 것이라 효과가 더욱 컸으리라..
2016년 11월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맞붙은 대선 결과가 준 쇼크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해 중순에 있던 브렉시트 투표와 함께 변화하는 세계를 느낄 수 있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오바마 대통령 지지율이 높았다는 점에서 트럼프 당선이 더욱 놀랍게 다가왔다. 정치 내부적으로 봤을 때에는 정당이 경선을 통해 좋은 후보를 뽑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큰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느꼈다. 언론과 정치의 관계에 있어서 여론조사의 한계를 절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제 날짜로 취임 1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미국은 물론 세계에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졌다. 멕시코 장벽은 정말 건설되고 있다. DACA에 으름장을 놓아 협상 카드로 활용했다. 미국은 유네스코, 파리기후협약에서 모두 발을 빼며 국제적 리더십을..
라는 연극이 있다. 100명의 일반인이 참여해서 벌이는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독일에서 시작된 이 연극은 세계 각지를 돌다가 광주로 왔다. 이들은 1명씩 각각 1%를 대변한다. 연극이 진행되며 이들은 질문을 받고 예, 아니오로 대답하며 자리를 옮긴다. 일반인 출연자는 관객에게 질문하기도 한다. 서울 시민인 관객에게 던지는 이런 질문이 나왔다. "당신은 이 공연에서 5.18 이야기를 기대했나?" 많은 관객이 손을 들었다. 무대에 선 사람에게도 질문이 주어진다. "광주가 5.18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기를 바라나요?" 무대에 선 사람 대부분이 긍정했다.우리는 광주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가슴아픈 문제이다. 한강은 에필로그에서 그들이 '희생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희생자가 되지 않기를 ..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대학살은 너무도 끔찍해서 심리학이나 정치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의 연구대상이 되곤 한다. 한나 아렌트가 에서 언급한 '악의 평범성'은 많은 사람들이 가진 상식을 뒤바꿔놓은 개념이었다.는 아우슈비츠가 흘러간 수용소가 아님을 보여준다. 최고로 평가받던 언론사와 직장이던 MBC가 파탄이 나는 과정을 보도국 중심으로 예리하게 보여준다. 사측은 비인격적 인사관리를 '잉여'와 '도구'로 노동자를 나눈다. 보도라는 노동에서 철저히 배제시킨 '잉여'와 주축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품질 관리를 위해 적당하게 참여시킨 '도구'. 해고자는 해고자대로, 잉여는 잉여대로 괴롭고 도구는 도구대로 수치스럽다. 동료가 쫓겨난 자리를 채운 시용기자를 나라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강고한 조직과 지지, 연대가 ..